난 오늘도 집에서 혼자 나만 기다릴 내 고양이가 안쓰럽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고양이 용품점’에 들어간다. 무심코 든 800원짜리 습식 파우치를 사려다, 문득 ‘프리미엄’ 이라는 문구가 적힌 800원보다 세 배가량 비싼 고급 참치캔이 눈에 띄어 습식 파우치를 내려놓고 바꿔 든다. ‘너도 부의 맛을 즐겨보렴.’ 순식간에 가격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고양이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주는, ‘멋진 집사’가 된 나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한다. 무언가 구입할 때도 신상품을 살지, 친환경적인 제품을 살지, 아니면 조금 더 예쁜 디자인의 제품을 살지. 나는 나름 내 주관대로 자유롭게 선택하여 구입했다고 믿지만, 그 선택의 이면에는 누군가 설계한 ‘Stake슬롯 지도’가 깔려 있다. 시장경제는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다. 시장경제는 인간의 욕망을 상품화하고, 다시 그 욕망을 조율한다.
시장은 우리의 본능적인 욕망을 꿰뚫어 본다. 요즘은 집에 누워만 있어도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리즘은 다 알고 있다. 폰을 보다 갑자기 추천 상품에 ‘캣타워 모양 화분’이 떴을 땐, 심히 당황스러웠다. 식물은 한 번도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는데, 식물 관찰하는 것과 고양이를 사랑하는 나를 이 정도로 꿰뚫다니.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시장은 이렇게 우리 Stake슬롯 빈틈을 어쩌면 우리보다 더 잘 안다. 안전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으며, 남들보다 앞서고 싶은 마음. 이런 사소한 욕망들은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계속해서 자극되고 각색된다. “이걸 가지게 되면 당신은 누구보다 멋진 사람이 된답니다.” 시장은 Stake슬롯을 단순히 반영하지 않는다. 포장하고 유도하며, 때로는 창조한다.
사실 Stake슬롯은 이용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Stake슬롯이 모이고 모이면, 시장은 그 흐름대로 진화한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혼밥족이 늘어나자 편의점과 밀키트 산업은 급성장했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제로칼로리 식품과 홈트레이닝 시장이 나타났다. Stake슬롯은 시장의 동력이 된다. Stake슬롯으로 하여금 경제는 비로소 움직인다.
문제는 이 Stake슬롯이 점점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SNS의 알고리즘은 우리가 무엇을 좋아할지 미리 예측하고, 쇼핑몰은 우리를 위한 추천을 쏟아낸다. 선택할 건 많지만, ‘진짜’ 선택지는 점점 줄어드니, 기이한 일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시장이 준비해 놓은 길 위를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큰 문제는, 이런 Stake슬롯이 끝없이 이어진다. 하나를 가지면 또 다른 하나가 필요하고, 만족감은 잠시뿐이다. 시장은 이 끊임없는 결핍의 감정을 연료 삼아 돌아간다. Stake슬롯은 만족을 목표로 하고, 시장은 결핍을 전제로 한다.
시장은 마치 하나의 거울 같다. 우리는 그 안에서 나를 비춰보며 무엇이 내게 어울리는지, 무엇을 원해야 할지 고민한다. 그런데 이 거울은 평범한 거울이 아니다. 조금씩 기울어 있고, 어쩐지 조명이 특이해 보인다. 왜곡된 Stake슬롯을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건, 그 거울이 너무 정교해서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시장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시장 안에서 Stake슬롯 주인이 되어야 한다. 어떤 선택이 진짜 내 안에서 비롯된 것인지, 무엇이 타인의 시선을 위한 선택인지를 구분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진짜 자유시장 안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진짜 자유이다.
집에 도착해 고양이에게 ‘프리미엄 참치캔’을 건넨다. 어라, 맛이 없나… 잠시 핥아보다가 이내 돌아선다. 하긴, 고양이는 무엇이 비싼 건지 모르니까. 앞으론 네가 잘 먹는 것들로만 잔뜩 사주리라고 다짐한다.
NO. | 수상 | 제 목 | ![]() |
글쓴이 | 등록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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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우수상 | ![]() 김소현 / 2025-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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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 우수상 | ![]() 김은서 / 2025-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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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우수상 | ![]() 정한의 / 2025-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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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 우수상 | ![]() 김민수 / 2025-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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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우수상 | ![]() 허성진 / 2025-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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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수상 | ![]() 김하연 / 2025-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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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우수상 | ![]() 정상효 / 2025-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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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우수상 | ![]() 박서연 / 2025-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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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우수상 | ![]() 박지혜 / 2025-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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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우수상 | ![]() 장용환 / 2025-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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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우수상 | ![]() 강채운 / 2025-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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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우수상 | ![]() 김연아 / 2025-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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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우수상 | ![]() 김태현 / 2025-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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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우수상 | ![]() 박종진 / 2025-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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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우수상 | ![]() 홍정연 / 2025-05-19 |